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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네 - 제주는 갑자기 눈이 왔다. 제주도 날씨의 장점은 겨울에 따뜻하다는 것이고 단점은 눈, 비가 많다는 것이다. 비나 눈이나 사람 발목 잡기는 마찬가지여서 여름이나 겨울에는 갑자기 일을 하게 되거나 또는 못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자영업자의 스케쥴 관리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하고 합리화를 해본다.. 나는 남쪽에 살고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눈 때문에 못 다니는 일이 없지만 문제는 말은 대부분 동쪽에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의 따뜻한 부분은 대부분 귤 농사를 짓고 있고, 원체 제주도가 따뜻한 지역이라고 해도 제주시 중산간과 서귀포 남쪽 해안가의 온도차이는 평균적으로 3-5도 정도가 난다. 따라서 말을 키울 초지가 없고 말들은 자연히 동쪽이나 서쪽에 살게 됐다. 언젠가 귤을 사먹게 ..
성스러운 피(Santa Sangre, 1989) 쉬는 날 오전부터 아내와 영화를 오래동안 봤다. 장르나 시대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무작정 틀었던 영화들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는 그의 1989년 작품으로 이전 작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이 존 레논의 지지를 얻고 난 후, 레논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투자를 많이 해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레논 사망 후 판권을 소유한 레논의 전 매니저와 다퉈서 전세계로 영화를 배급하지 못했고, 조도로프스키는 그저 컬트영화 감독 정도로 남았다는 말도 있다. 일설에는 매니저가 에로영화를 찍으라고 했다는데, 한국 웹에 떠도는 소문들의 신뢰성을 고려한다면 그저 그럴싸한 가설이지 않을까. 사실 영화가 좀 에로하긴 하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를 알게 ..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줄게 얼마전에 도내에서 승마 대회가 있었다. 대회 나가기 전에 승마장에서 신발을 신겨주려다 시간이 안맞아서 직접 대회장에 가서 신발을 신겨주게 됐다. 대회장은 도내 고등학교에 딸린 승마장 겸 목장으로, 나름대로 제법 구색은 갖췄지만 어딘가 너저분한 인상을 줬다. 차를 대고 마사로 들어가니 어린 친구가 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생이다. 혼자 낑낑대며 톱밥을 나르는데, 춥지도 않은 제주도에서 패딩까지 입고 일을 하니 땀이 나는 듯 했다. 좀 도와줄까해서 마방을 둘러봤다. 이미 건초를 줬는지 말들은 풀을 한창 씹느라 정신이 없었다. 좀 도와 드릴까요? 어차피 말들 밥먹는 중이라 일은 못하니까요. 목장에서 일할 때 톱밥을 정말 많이 날랐다. 말은 사치스런 동물이다. 매일 매일..
토착왜구놈들 때문에 나라 꼴이 9월 초에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일정이 짧아서 그저 먹고 마시고 쉴 생각으로 갔는데 생각보다 많이 먹고 마시지는 못했다. 나이가 드니 처먹는 것도 이제 한계가... 오랜만에 후쿠오카를 갔는데 항공권도 그렇고 물가도 그렇고 제주도보다 싸서 약간 놀랐다. 예전에는 실내흡연이 가능한 가게도 무척 많았었는데 이제는 세상이 세상이라 그런지 작은 다방 한 곳과 흡연실이 따로 있는 카페를 제외하고는 실내흡연을 할 수 없었다. 어쩐지 다방에서 커피 마시는데 일본 아재들이 겁나게 들어옴. 일본에 도착해서 첫 끼로 먹은 소혀구이. 한국에는 규탄파는 곳이 많지 않은듯. 6년 전에는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그랬다. 먹고 살만하니까 그런가보다. 규탄 먹고 바로 한잔 마시러 감. 상가 안에 작게 마련된 사케를 서서 ..
꿈장이 요셉 1. 친구들을 만났다. 병원과 체육관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아주 거대한 건물을 구경했다. 병원동 복도에 늘어선 하얀 샷시를 슬쩍 보니 창틀 안에 연두색 알약들이 버려져 있었다. 불쑥 나타난 의사가 말했다. 그건 성적 쾌감을 증대시키는 약이에요. 아 그래요. 몰래 주머니에 하나 챙겼다. 운동기구가 즐비한 건물에 가서 오랜만에 운동을 하고 씻으러 갔다. 샤워실에 흑인 어린이 셋이 존나 시끄러웠는데 사람들이 혼은 못내고 그냥 샤워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플라스틱 텀블러를 발로차서 셋 중 가운데 아이를 맞췄다. 조용히 좀 해라 이새끼들아. 물통 맞은 놈이 씩씩거리며 애들을 끌고 나갔다. 이제 씻어볼까 하는데 아까 그 셋이 정장 입은 어른 흑인 셋을 데려왔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
사랑의 맞담배를 피워요 -얼마 전 오랜만에 육지에 가서 장인장모님도 뵙고 친구들도 만났다. 친구 하나는 7년 만난 여자친구와 최근에 헤어졌다. 친구는 창피한 듯 요새 많이 운다고 했다. 울 수 있을 때 많이 울어야지. 친구한테 말하지는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20대 때는 정말 울지 않았다. 26살 무렵에 2년 좀 넘게 사귀던 사람과 헤어졌었다. 상수동에 자주 가던 술집에서 평소처럼 맥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그 사람이 그랬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는 그러자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내 미래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나는 대학원을 가네 마네 하며 취직을 미루던 때였다. 내 자신도 나를 믿을 수 없어서 딱히 붙잡을 수도 없었다. 사실 그 전에도 헤어진 연인들을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나는 늘 이별을 통보 받고 그..
산다는 건 다 그런거야 - 요즘은 사람들이 솔직한 것과 무례한 것을 구분할 줄 모른다. 이런 소리를 하면 꼰대라고 생각한다. 마치 꼰대가 동네 바보라도 되는 것처럼 조롱하고 비웃지만, 사실 꼰대란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마 백년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꼰대가 되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마치 본인들은 절대 그러지 않고 60살 처먹고도 스냅백에 반짝이는 스티커 붙이고 꺼꿀로 쓰고 다닐 것처럼 하는 것이 좀 웃기다. 서구사회에는 그런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선땅에는 나잇값이라는 개념이 있다. -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동물 고기를 잘만 처먹으면서도 TV동물농장만 봐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인데, 내 말을 듣지 않는 동물들을 꾸짖지만 사실 마음 한켠에는 제발 인간을 믿지 말아라 하는 생각도 한다. 좃간을 믿고 따라봤자..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