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일을 하면서 화가 많이 났다. 화가 난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로 말이 말을 안 들어서, 둘째로 말이 불쌍해서, 셋째로 나 자신이 좃같아서. 이 세 가지 경우의 비율이 매번 좀 다르지만, 대충 셈해보면 각각 삼분지 일 정도 된다.말이 말을 안 듣는 일은 아주 흔하고, 순간적으로 분노가 차오르지만 길게 가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너무’ 말을 안 듣는 경우 엄하게 혼내고 달래주는데, 달래주는 과정에서 늘 후회하기 때문이다. 겁먹은 말의 커다란 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고,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니, 널 잘못 키운 인간의 잘못이지.’ 식의 종 차원의 반성을 하게 된다.엄숙한 반성 후에 곧이어 다시 말을 개판으로 키운 그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더군다나 그때부터는 더 많은 ..
글을 쓰는 일에 아주 흥미가 없어졌다. 그래도 뭔가를 쓴다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데 꽤 도움이 될 것 같아 앞으론 일기 쓰듯 써보려고 한다. 사실 이것도 얼마나 갈지는 장담 못 할 일이다. 나는 꽤나 게으른 인간이기 때문에. 오전에는 shoeing을 한 마리 하고 trim을 두 마리 했다. 신발을 신긴 말은 씨수말인데 오른쪽 앞 다리가 편치 않다. 경주마 시절에 다쳤다고 한다. 그렇게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내가 보는 말들은 대부분 다쳤었거나 몸이 불편하다. 어쩌면 국내에 있는 대다수의 말들이 그럴지도 모른다. 애석한 일이다. 편치 않은 다리의 굽은 넓고 퍼졌다. Bar는 약하다. 바닥은 거의 평평하다. 반대로 왼쪽은 평범하게 건강하다고 할만한 굽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오른쪽에 왼쪽보다 한 치수 큰 편..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도인의 말 같다. 숲을 보지 못한 사람의 대부분은 숲이 뭔지 모른다. 모르는 것을 보라니 볼 수가 없는 노릇이다. 숲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숲을 본다. 삶은-맹인들껜 죄송하지만-시선이다. 시선이 가는 대로 산다. 그러다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멈추면, 그 시간이 찰나가 된다. 시선은 찰나이지만 찰나는 영원과 같다. 찰나에 마음을 뺏기고 조용히 이끌려 우리는 영원으로 흘러간다. 숲을 모르면 숲을 바라볼 수 없고, 숲을 시선에 담지 못하면 일생동안 숲을 알지 못한다. 머리와 꼬리가 이어진 요르문간드처럼 삶은 저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간의 일들에서 나는 전혀 숲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몇몇 나무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마 지난 해 부터 얼마 전까지 나는 바Bar에 대한 고민으로..
마당에 나가 땅을 보고 있으면 크고 작은 벌레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봐도 무얼 하는지는 정작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나는 그걸 물끄러미 보게 된다. 만약 내가 무심코 밟고 지나갔다면 벌레들은 죽거나 다쳤을 테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게 우주가 흘러가는 방식인 것만 같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꽤나 비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아주 거대한 존재 앞에서는 사실 그저 움직이는 무언가로 보일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채 짓밟고 지나간다면 인간의 삶은 찰나처럼 사라지고 말 뿐이다. 어린 시절에 재밌게 봤던 영화 중 하나가 '애들이 줄었어요(Honey, I Shrunk the Kids, 1989)'였다. '진명비디오'라는 동네 비디오가게-나중에 알게 됐는데 진명은..
-2월 말에 이사를 했다. 등기엔 2010년대 건축물로 올라와 있지만 아무리봐도 90년대의 물건 같은 단독주택이다. 200평 남짓한 마당의 대부분은 귤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집주인은 전정이며 농약이며 이것저것 하러 오겠다고 했지만 이사 온 지 거진 두 달이 지나서야 가지를 치러 왔다. 이사오던 날 휴지 한묶음을 사와서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이 집 사란다. 그러면야 얼마나 좋겠냐만은. 이사오고 나서 바퀴벌레를 10마리도 넘게 잡았다. 아내는 방에서 바퀴벌레와 마주치면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내가 올 때까지 들어가지 않는 스타일이다. 다행히도 모든 바퀴는 내가 집에 있을때 출몰해서 아내는 피신하거나 도망하지 않아도 됐다. 처음 몇 번은 그냥 휴지로 잡아서 바깥에 풀어줬으나 동일한 놈이 다시 들어오는 것 같아..
오랜만에 일을 했다. 눈이 많이 온 탓에 계속 쉬었다. 오래 쉬다가 하는 일은 평소보다 더 힘들다. 쉬면 아프다. 이것은 성산 근처 목장 사장님의 지론이다. 요새는 나도 느낀다. 몸은 참 우습게도 늘 일을 할때는 괜찮다가 쉬면 여기저기 아프다.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의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신성한 인간의 노동만이 신성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도 신성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이 신성할 수 없기에 그저 노동만이 신성하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면서 사는게 그렇게 부끄럽지 않아서 다행이다. 작년에 태어나 이제 한 살이 된 망아지들을 봤다. 아직 2월이니 만으로는 한 살이 안 된 아이들도 있었다. 조금 작..
지지난주에 육지에 다녀왔다. 아내 병원 일정에 맞춰 겸사겸사 처부모님과 어머니를 뵀다. 이번에 보고 구정에는 안올라갈 심산이기도 했다. 게다가 친구 아들 돌잔치도 있어서 안가기는 어려웠다. 육지 갔던건 다 좋았는데 내려와서 내내 아팠다. 병원에 가니 A형 독감이란다. 근래 10년 동안 이렇게 힘들었던 감기는 또 처음이다. 지난 주 화요일부터 거진 1주일을 내리 쉬었다. 몸은 아프고 일은 밀리는데 곧 이사를 가야해서 조금 낫자마자 집을 보러 다녔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단독주택에 살아보고 싶어서 많이 찾아봤는데 썩 맘에 드는 집을 찾기는 힘들었다. 삶이란게 내 맘대로 되는 것이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사실 지금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이다. 최근에 많이 느끼는 건데 어찌됐든 방향이 중요한 것 같다. ..
오늘은 하루종일 한 목장에서 일했다. 주말에 경마장으로 가야하는 말을 먼저 봤다. 4살 짜리 숫말이다. 어린 말들이 대체로 그렇듯 까불이 자식이었다. 말이 엄청나게 까불면 일을 못한다. 그러나 적당히 까불면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적당히 까부는 말이 제일 힘들다. 힘든 자식이었다. 사실 예전에 신발을 신겼던 말인데 그때보다 훨씬 까불었다. 많이 쉬니까 힘만 찼나보다. 아주 그냥 한 대 갈기고 싶은걸 잘 참았다. 이정도는 이해해야지. 작지 않은 말이라 그런지 굽도 꽤 컸다. 큰 발을 다리 사이에 끼고 일을 하면서 좋은 삭제란 무엇일까 고민했다.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굽은 그저 자라날뿐이다. 자라난 굽은 땅과 말의 무게와 말의 몸에 의해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