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줄게

 얼마전에 도내에서 승마 대회가 있었다. 대회 나가기 전에 승마장에서 신발을 신겨주려다 시간이 안맞아서 직접 대회장에 가서 신발을 신겨주게 됐다. 대회장은 도내 고등학교에 딸린 승마장 겸 목장으로, 나름대로 제법 구색은 갖췄지만 어딘가 너저분한 인상을 줬다. 차를 대고 마사로 들어가니 어린 친구가 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생이다. 혼자 낑낑대며 톱밥을 나르는데, 춥지도 않은 제주도에서 패딩까지 입고 일을 하니 땀이 나는 듯 했다. 좀 도와줄까해서 마방을 둘러봤다. 이미 건초를 줬는지 말들은 풀을 한창 씹느라 정신이 없었다.

 좀 도와 드릴까요? 어차피 말들 밥먹는 중이라 일은 못하니까요.

 목장에서 일할 때 톱밥을 정말 많이 날랐다. 말은 사치스런 동물이다. 매일 매일 청소를 해줘야 좋아하고, 먹던 풀보다는 새로운 풀을 좋아한다. 스승의 목장 마방 기준으로 한 마방 당 하루에 대충 3-4개의 톱밥을 깔아줬다. 마방을 치울 때는 말의 배설물과 젖은 톱밥만 걷어내고 깨끗한 것은 다시 쓴다. 자본이 넘쳐나는 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했다. 아는 형님은 그것도 싫어서 하루만 쓰면 모든 톱밥을 다 걷어내고 새로 깔아줬다. 이러면 톱밥이 6-7개 정도 필요하다. 톱밥은 4.5톤 메가트럭으로 한 차에 100만원이다. 100만원 어치를 사면 스승의 목장은 아끼고 아껴 6개월 정도를 썼으니, 말을 7마리 정도 키우면 톱밥 값으로만 1년에 200만원이 든다. 

 괜찮다고 말끝을 흐리는데 별로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개꼰대라서 요새 밀레니얼 세대들의 간접적이지만 단호한 화법을 알지 못해서 도와줘도 괜찮다는 뜻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다. 톱밥은 한 포대에 20kg 내외인데 그걸 세 네 개씩 수레에 올려서 나르는 것이 그 학생 혼자서는 오전 내내 해야될 것 같았다. 나는 수레를 끌거나 톱밥을 들거나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왜 혼자서 일을 다 하냐고 물으니 오늘은 자기만 공강이라서 다른 친구들은 학교에 갔다고 한다. 공강이면 놀러 가고 싶겠네요 하니 한 달을 쉬는 날 없이 살았다고 뿌듯한 듯 자랑했다. 요새 어린 친구들은 열정적으로 사는구나. 조금 숙연해졌다. 

 승마장에 있는 친구들은 다 학교 동기들이에요? 

 자신은 스물한 살이고 또 다른 여자아이는 스무 살이고 누구는 또 스물일곱 살이고 하는데, 나도 이십 대 초반에 이랬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땐 내가 어른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는 이십 대는 너무 아이 같아서. 또 십년 뒤에 삼십 대를 만나보면 똑같을까 싶다. 아무튼 학생은 심심했는데 잘됐다 했는지 말을 타다 낙마해서 미간이 찢어진 것, 내 일을 학교에서 실습으로 해봤는데 너무 힘들었다는 것 등을 이야기 하다 문득 날 쳐다봤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몇 살이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당황스러워서 순간적으로 내 나이를 까먹었다. 내가 올 해 몇살이지? 윤석열 나이로 해야되나? 그래서 그냥 나오는대로 말했다.

 저는 그냥 아저씨죠 뭐.

 여자들은 아줌마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다던데, 나는 아저씨가 좋다. 청춘의 오만함과 미숙함 같은 것이, 어쩌면 그게 청춘의 특권일지라도 이제는 그게 낯간지럽다. 탈모가 오는 내 친구들이 제법 있다.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거나 따로 케어를 받기도 한다. 피부관리를 열심히 하는 친구,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는 친구, 어린애들과 놀고 싶은 친구.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저물어가는 청춘을 붙잡으려는 마지막 몸부림 같아서 조금 이상하다. 하기사 친구들도 내가 이상하겠지. 

 내가 아저씨라고 하니 학생은 그저 웃었다. 목소리 깔고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할 걸 그랬나보다.

 

https://youtu.be/0xG_ZOAEv18?si=qmMitfEHdocDgVV5

 노가다 아저씨들 이노래 진짜 개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