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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

 수요일 점심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으레 그렇듯 별 일 없냐로 시작하더니 곧 누나 얘기를 꺼냈다. 친구는 한 살 연상과 결혼했다. 누나가 연애할 때부터 갑상선이 별로 안좋더니, 얼마 전에 검사를 해보니 병원에선 갑상선 조직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갑상선암 일 확률은 30퍼센트 정도라고. 여기까지 말하다가 친구는 울음을 터트렸다. 해줄 말이 별로 없었다. 그저 이겨내라고 말했다. 너가 가장이니까 무조건 버티라고. 돌잔치에는 못 가게 돼서 미안하다고. 친구 애기는 3월에 돌을 맞는다. 선천적으로 콩팥이 하나뿐이다. 누나가 암보험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잘 모른다고 했다. 만약 누나가 암 판정을 받더라도, 이제는 갑상선암이 유사암으로 분류가 되는 경증의 암이기 때문에 큰 걱정 하지 말라고 했다. 아플 때 서운하면 평생 가니까 잘해주라고. 친구는 점심 먹으러 집에 가본다고 했다. 힘내라, 조만간 한잔 하자. 늘 하던 말을 하고 끊었다. 2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돌이켜 보면 삶이란 것이 항상 우리 둘에게 좀 가혹한 편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게 팔자라는 건지도 모른다. 좆같은 팔자다. 일을 하면서 성질 더럽거나 힘든 말을 만날 때 마다 혼자 속으로 말한다. 시발 이게 내 팔자다. 

 버티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몸이 부서질 때까지 버티다가, 그렇게 쟁취한 삶을 오롯이 남을 위해 살게 된다. 모든 인간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어른들만 그렇게 살 수 있다. 내가 사회에 대해 대단히 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한국이 곧 망할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여기엔 어른은 없고,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좃만이새끼들만 버글버글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새는 어른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은지 영포티니 뭐니 하는 개 좃같은 소리만 늘어놓는다. 추락해서 결국 개박살나게 될 한국에서 적어도 나는 어른으로 죽고싶다.